부동산 위기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는 중국
중국은 노동력과 토지에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투입해 성장한 조방형(양적) 경제라는 구조적 문제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 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중국 경제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 걸까? 우선 살펴볼 게 바로 중국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다. 헝다, 완다, 비구이위안 모두 중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5대 부 동산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다. 그렇다고 중국 부동산 문제가 단순히 헝다와 완다, 비구이위안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앞으로 중국 부동산 시장에 큰 구조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중국 국민의 생활 수준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로 민간 자본의 사기업들이 태동하며 생산성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생산성 증대는 1998년 생산 과잉 문제를 불러오게 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다면 중국도 4대 은행 모두 파산 위기를 맞을 정도의 위기를 겪었는데, 주룽지 총리가 국영자산관리공사를 만들어 부실채권 정리로 은행을 살리면서 연착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자본주의 경제 요소를 도입해 급격한 생산 증대와 경제 발전을 경험하던 중국은 생산 과잉에 부딪히며 한순간 엄청난 경제 쇼크에 빠졌다. 보 통 과잉 재고가 GDP의 50%라면 굉장히 높은 수준인데, 당시 중국은 70%가 넘을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 물건이 팔리지 않고 경제가 멈추자 중국 정부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을 생각해낸다. 생산 과잉이란 말 그대로 물건을 생산하는데 팔리지 않는 것이니,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시행한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도시화였다. 현재 중국의 도시화 수준은 63%~64% 정도 인데, 1998년의 도시화 수준은 굉장히 낮았다. 정부는 도로를 건설하는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 농촌 인구를 도시 경제권에서 생활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물건을 살 사람을 늘리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도시화 과정에서 토지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당시 중국엔 부동산 시장 자체가 없었다. 기업에 취직하면 복지 혜택으로 부동산을 주는 식일 뿐, 개인이 부동산을 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1998년부터 정부가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민간에게 개방했다. 과거에는 그냥 주어졌다면 이제는 정부와 회사에서 보조금을 주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자 농촌의 인력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며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집을 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1993년 내가 옌볜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며 받은 첫 월급이 400위안(한화 약 5만 원)이 채 안 됐다. 1998년에도 800위안 정도를 받았으니, 나처럼 대부분의 봉급 생활자들은 적은 월급 탓에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는 은행 대출이라는 마법이 존재했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빚을 내 집을 샀더니, 빚쟁이는 커녕 껑충껑충 뛰는 집값에 부자가 됐다.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멀다고 뛰니 대출 이자를 갚고도 수익이 엄청났던 것이다. 당연히 부동산(집)을 사면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는 의식이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 중국인들은 너도나도 부동산을 사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해도 은행 대출을 받 아 수십 수백 채씩 아파트를 사고팔며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현상이 1998년 부터 2007년까지 쭉 이어진 것이다. 물론 부동산이 폭락한 시기도 있지만, 그 역시 잠시뿐이었다. 예를 들어 북경의 부동산은 2000년부터 2007년, 2008년까지 쭉쭉 가격이 올라가다가 금융위기가 터지며 한꺼번에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2014년 적극적으로 부동산 시장 부양정책을 실행했고, 이에 힘입어 2016년 북경 부동산 가격은 다시 100%씩 뛰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생산 과잉 문제를 중국은 도시화라는 국내 수요 촉진으로 해결하려 했고,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인프라 확충은 땅을 소유한 지방정부의 몫인데, 정작 지방정부에는 충분한 예산도 없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결국, 지방정부가 생각 해낸 것이 국유기업을 만들어 자금을 확보하고 그 땅을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자금이 풍부한 대기업을 끌어들여 도시화를 진행했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 수익률이 너무 높아지며 부작용도 커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부동산과 관련 없는 의류나 요식업을 하던 상장기업들도 직원 월급이 계 속 올라 본업 마진율이 갈수록 떨어지자, 수익률이 좋은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전력, 전자 등 몇몇 산업을 제외하면, 중국의 모든 산업과 부동산의 상관계수가 20%부터 많게는 60%를 기록할 정도였다. 부동산 사업에 손을 안 댄 상장기업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도시화와 지방정부의 계획이 맞물리며 부동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시행한 두 번째 방안이 해외 수출이었다. 중국에서 생산한 물건을 중국에서만 팔 게 아니라, 외국에도 내다 팔자는 수출 주도 모형이 이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2001 년 중국이 마침내 WTO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다. 우리는 1998년 주택시장 개방, 2001년 WTO 가입이라는 두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2001년 WTO 가입으로 전 세계 무역망에 참여하면서, 드디어 중국 경제가 부동산 시장의 성장과 수출 주도형 경제라는 두 축으로 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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